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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육원 퇴소아동의 명과 암.. 만18세 보호종결 年2000여명
YESDaddy 27.100.224.41
2017-07-18 09:35:17
상) 보육원 퇴소아동의 명과 암
明-자립 성공 김현재씨, 보육원 사회복지사 도움에 전세대출 받아 주거비 해결.. IT 통신장비 업체에 취업
暗-인생 유전 박호정씨, 고3때 여자친구 임신 후 아이 둘 낳고 집 나가버려.. 아들.딸 결국 보육원으로
부모 이혼이나 빈곤 등으로 보육원(아동복지시설) 등에서 자란 요보호아동 3만명 가운데 매년 2000여명은 아동복지법에 따라 만 18세가 되면 보호가 종결된다. 성인이 된 이들은 홀로서기를 시작해야 한다. 보호종결아동은 준비 및 지원 부족으로 생활고에다 심적 갈등을 겪기도 하지만 주위의 도움으로 자립에 성공하는 경우도 있다. 파이낸셜뉴스는 보호종결아동의 문제점 진단 및 건강한 자립을 위해 필요한 정책, 미래 비전 제시를 위해 2차례에 걸쳐 시리즈를 마련한다. <편집자주>

18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00년 요보호아동 발생은 7760명, 지난해는 4592명이다. 요보호아동은 부모 및 그 밖의 보호자와 사별했거나 보호자가 행방불명됐을 때, 또는 보호자에게서 버림받은 18세 미만 아동을 일컫는다. 성인이 된 이들 앞에 닥친 사회는 녹록치 않다. 금전적 어려움과 방치 등이 발목을 잡는 것이다.

■소득 낮아도 주거는 보육원과 시민단체 도움으로

김현재씨(가명.24)의 어머니는 아버지와 이혼 후 가출했다.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본 건 일곱살 때다. 아버지는 새벽 인력시장을 전전하며 현재씨를 키우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현재씨는 일곱 살부터 스무 살까지 보육원에서 자랐다.

그가 초등 5학년 때까지 지낸 서울의 미인가 보육원은 '배고픔'이었다. 하루 한 끼를 먹었다. 훔치는 버릇이 생겼다. 현재씨가 문방구 주인에게 말을 걸면 같은 보육원에 다니던 누나가 계산대에서 돈을 챙겼다.

현재씨는 6학년 때 서울의 다른 보육원에 입소했다. 지금까지 자신을 지지해주는 보육원과 사회복지사를 만났다. 새로 찾은 보금자리에서 굶은 날을 보상하려는 듯 한동안 밥솥을 끌어안고 살았다.

2011년 현재씨가 고2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하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그는 서울의 한 공고 졸업 후 전공인 용접을 살려 경남 거제도 조선소에 취업했다. 주6일, 하루 평균 12시간의 고된 노동. 대화 없이 온종일 일만 하면 목이 잠겼다. 결국 3년 만에 휴식을 위해 상경했다.

현재씨는 지난해 7월 경기 과천의 IT 통신장비 제조업체에 취업했다. 월급은 150만원. 낮은 소득으로 홀로서기를 하는 보호종결아동에게 막대한 주거비는 가장 큰 문제다. 보육원 사회복지사 도움으로 LH가 보호종결아동을 지원하는 7500만원 전세임대대출을 받았다. 서울 신림동 인근 20년 된 빌라다. 이자로 매달 12만원을 낸다. 아름다운가게에서 300만원 후원도 받았다.

현재씨는 주변 도움이 없었다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넉넉지 않은 월급이지만 그래도 감사한다며 웃었다. 현재씨는 가족과 떨어지던 일곱 살 때가 가장 힘들었다. 살면서 가장 기쁠 때는 '하나님 아버지'를 만났을 때라고 했다. 하늘이 그에게 남은 유일한 가족이다.

■앞 안보이는 삶, 자녀도 보육원으로

보호종결아동 중 나이에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겪기도 한다. 자립에서 중요한 시기인 만 18세에 여자친구의 임신과 결별, 두 자식을 보육원에 보낸 일도 있다. 박호정씨(가명.27)의 삶이 뒤바뀌는 건 한 순간이었다.

호정씨는 서울의 한 보육원에서 자랐다. 고1 이후로 학교에 나간 적이 없다. 주유소에서 일하던 고3때 여자친구 임신소식을 알게 됐다. 여자친구는 부모가 없다. 함께 고시텔을 전전하다 여자친구 이모가 마련해준 집에 들어갔다. 다음해 아이를 한 명 더 낳았다. 하지만 호정씨 여자친구는 육아보다는 유흥에 빠졌고 곧 집을 나갔다. 호정씨는 20살, 여자친구는 19살이었다.

호정씨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직 방안에서 우는 두 아이 뿐이었다. 우울증이 찾아와 2개월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는 만18세 성인이 된 후 갑작스럽게 겪은 풍파를 떠올리면 눈물부터 난다.
 
그는 "세상에 나 밖에 없는 느낌"이라며 "(자식들을) 혼자 키울 수도 없고 부모가 있는 것도 아니고 가진 건 몸뚱이 하나"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결국 호정씨는 두 아이를 자신이 어릴 적 그랬던 것처럼 보육원에 맡겼다. 첫째 아들은 '엄마, 아빠'라고 말문이 트일 때였고 둘째 딸은 막 기어 다니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junjun@fnnews.com 최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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