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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년 전 오늘…미국인 홀트 부부, 한국 전쟁고아 8명 양자로 품다
예스대디 27.100.224.41
2016-10-21 08:25:05
(왼쪽부터) 고(故) 버다 홀트·해리 홀트 부부가 한국 전쟁고아 8명을 입양했다. /사진=홀트아동복지회 제공
(왼쪽부터) 고(故) 버다 홀트·해리 홀트 부부가 한국 전쟁고아 8명을 입양했다. /사진=홀트아동복지회 제공
 
 
61년 전 오늘(1955년 10월12일) 미국에서 건너온 해리 홀트·버다 홀트 부부는 한국인 전쟁고아 8명을 입양하고 다른 4명의 아이들의 미국 입양을 주선한다.

홀트 부부는 국내 아동복지 사업의 전기를 마련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들이 세운 '홀트아동복지회'는 1957년 첫 국내 입양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약 20만명의 아동에게 새 가정을 찾아 주었다. 외국인이 설립한 이곳이 오늘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사회복지기관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홀트 부부가 첫 입양을 결심한 건 1954년 어느 가을, 당시 미국 오리건주에서 농장을 운영했던 이들은 마을회관에서 상영하는 한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게 된다.

이 다큐는 한국전쟁이 남긴 전쟁고아들의 참상을 담은 내용이었다. 특히 미군 병사들과 한국인 사이에 태어난 혼혈고아에 대한 내용은 모든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영화 말미엔 고아들을 돌볼 손길이 필요하다는 호소가 곁들여 있었다.

"우리와 같은 가난한 농부들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영화를 보고 난 뒤 홀트 부부는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안타까운 마음만 남긴 채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홀트 부부는 시간이 지날수록 다큐 속 고아들의 장면이 수없이 떠올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당시 부부는 이미 여섯 자녀가 있었지만 한국의 전쟁고아를 품기로 결심한다. 이들은 농장의 일부를 팔아 자금을 마련해 이듬해 무작정 한국으로 떠난다.

한국을 찾은 홀트 부부는 혼혈아 등 8명의 전쟁고아를 입양하고 다른 4명은 미국의 다른 부모에게 입양을 주선한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홀트부부는 1955년 자신들의 이름을 딴 '홀트씨(氏) 양자회'를 한국에 설립하고 본격적인 입양사업에 나선다. 이후 1972년 오늘날의 ‘홀트아동복지회’로 명칭을 변경한다.

홀트 부부는 세상을 떠난 후에도 고향 미국이 아닌 한국에 나란히 잠들어 있다. 1964년 세상을 떠난 남편 해리와 남편의 유업을 이어 홀트아동복지회를 이끌다 2000년 삶을 마감한 버다 여사 모두 경기도 일산에 자신들의 묘를 마련할 정도로 한국 사랑이 각별했다.

“아버지는 입양 일을 시작하신 후 저에게 간호학교를 졸업하면 직접와서 일을 하면 어떻겠냐고 하셨습니다. 한국에 죽어가는 아이들이 많으니 와서 도와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홀트 부부의 둘째 딸인 말리 홀트 여사(81)는 스무살이던 1956년, 아버지의 뜻에 따라 60년 가까이 간호사로 봉사하며 한국에 살고 있다. 2000년부터 말리 여사는 홀트아동복지회의 이사장직을 맡아 생전 부모님의 봉사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파란눈 미국인 부부가 세운 홀트아동복지회는 '사랑을 행동으로' 홀트 부부의 정신을 이어받아 입양 사업은 물론 아동, 청소년, 장애인, 저소득계층, 다문화가정 등 소외된 이웃에게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복지 전문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국내 유명 연예인들이 이곳을 통해 공개입양을 하고 기부에 적극 동참하는 등 홀트아동복지회는 입양에 대한 편견을 깨고 기부의 대중화를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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