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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혈아의 어머니 펄벅을 그리며 "어머니,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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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28 13:39:15

부천타임즈: 최수진 기자

   
▲ 사진에서 펄벅이 안고 있는 아이가 고재헌이다

1932년과 1938년 각각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펄벅(Pearl S. Buck)이 1960년대에 소사희망원 아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있다. 그 중 펄벅이 품에 안고 있는 아이가 바로 고재헌 씨다. 이 사진의 주인공이 11월 10일 부천펄벅기념관에서 열린 '펄벅의 눈으로 본 한국' <새해> 문학유산 콘서트를 찾았다. 사진 속 귀여운 꼬마는 어느새 할아버지가 되었다. 고재헌 씨는 무대에 올라 그의 오랜 기억 속에 있는 펄벅과 소사희망원의 추억을 꺼내놓았다.

펄벅의 품에서 행복했던 꼬마, 고재헌

큰 키에 수염을 기르고 뉴욕양키즈 이니셜이 박힌 모자를 쓴 고재헌 씨는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6.25전쟁 중에 파주에서 태어났어요. 펄벅 여사가 안고 있는 꼬마가 저입니다. 저런 꼬마가 이렇게 할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고재헌 씨는 펄벅을 인자 그 자체라고 말했다. "우리는 선녀라고 생각했어요. 할머니라고 불렀는데, 할머니라 그러면 싫어하셨어요. 이제 60살을 갓 넘었는데 어떻게 할머니냐며 엄마라고 부르게 하곤 했죠."

   
▲ 고재헌씨가 10일 밤 열린 콘서트 무대에서 어머니 펄벅을 회상하고 있다 ⓒ부천타임즈

부천의 옛 이름은 '복사골'이다. 그만큼 복숭아가 많았다. "지금은 펄벅기념관 앞으로 아파트 있는 쪽이 다 복숭아 나무였어요. 우리는 비 오는 날만 기다렸어요. 복숭아를 먹고 싶은데, 맑은 날은 똑똑 복숭아 따는 소리가 들려 주인에게 들키기 때문이었어요. 비 오는 날은 소리 걱정 없이 복숭아를 많이 따먹었죠. 그런 우리를 보고 펄벅 할머니가 몰래 따먹지 말고, 키워서 먹으라며 소사희망원 뒤에 복숭아나무를 심어줬어요."

고재헌 씨는 소사희망원이 좋았다. "여기가 좋은 게 놀림을 안 받아서였어요. 다 같은 혼혈 아이들이니 서로 놀릴 이유가 없었고, 당시에 원장님 이름이 해리스였는데, 미국에서 FBI 출신이라고 했어요. 그래서 우리를 놀리는 아이들이 있으면 혼내준다고 하니, 아이들은 FBI에게 잡힐까봐 우리를 놀리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기세가 등등해서 다녔어요."

펄벅은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었다. "펄벅 할머니는 부천소사희망원을 HOPE TOWN이라고 말했어요. ‘여기는 고아원이 아니다. 너희에게 희망을 주는 곳이다. 너희는 고아가 아니야. 너희는 대한민국에 빛이 되어야 한다.’고 늘 이야기 했죠. 지금도 우리 할머니가 그립습니다."

펄벅이 가장 그리울 때가 언제인지 묻자, 잠시 말을 멈췄다. "저는 펄벅 할머니가 쓴 책이 하나도 없어요. 다 버렸어요. 그 책만 보면 엄마 생각이 나서요. 그때 친구들을 모두 다 보고 싶어요." 다들 먹고 살기 바쁘거나 손주 보는 재미에 푹 빠져서 전처럼 모이는 게 쉽지 않다.

"펄벅 할머니는 노래 중에 <낮에 나온 반날>과 <푸른 하늘 은하수>를 좋아했어요. 우리를 다독이며 자주 불러주던 노래에요." 고재헌 씨는 반주 없이 노래를 시작했다. "낮에 나온 반달은 하얀 반달은 햇님이 쓰다 버린 쪽박인가요. 꼬부랑 할머니가 물 길러 갈 때 치마끈에 달랑달랑 채워 줬으면."...울먹 거렸다.

그의 노래에는 그리움이 잔뜩 묻어났다. 관객도 함께 따라 불렀다. 노래가 끝나고 고재헌 씨는 "어머니 보고 싶습니다."라고 가을밤 하늘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 펄벅의 입양딸 구순이, 줄리헤닝

펄벅의 입양딸 구순이, 줄리헤닝

미국에서 한 통의 영상편지가 도착했다. 펄벅의 입양 딸인 줄리헤닝(한국명 구순이) 씨가 '2018 펄벅 국제 학술대회'를 축하하는 내용이다. 1968년 5월 펄벅의 입양 딸로 미국에 간 후 쭉 미국에 살았다. 줄리헤닝 씨는 미국에서 수학교사를 하다 은퇴했다. 영상 속 구순이 씨는 유창한 영어로 말하고 있다. 영상편지에서 한국에서 살았던 때와 입양 후의 삶 그리고 펄벅을 이야기했다.

줄리헤닝 씨는 한국 사람들을 출생과 유년기의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저는 한국전쟁이 끝날 즈음인 1953년 5월 부산에서 태어났어요. 제 어머니 정송자와 저는 어려운 삶을 살았지만 어머니는 저를 정말 사랑했어요. 저는 제 아버지가 미군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몰랐어요. 제대로 이해받지 못하는 인종(혼혈)의 구성원으로 자랐지만 저는 한국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 펄벅의 입양딸 구순이, 줄리헤닝

줄리헤닝 씨는 소사희망원에 13살 때부터 생활했다. "정송자 어머니는 가장 어려운 사랑을 제게 보여주었죠. 13살인 저를 소사희망원으로 보냈어요. 소사희망원은 제게 필요한 것을 제공해 주었으며 새로운 친구도 만났고 공부도 할 수 있었습니다."

펄벅은 소사희망원에서 줄리헤닝 씨를 발견하고 1968년 5월 미국으로 데려갔다. "그렇게 펄벅은 저의 두 번째 어머니가 되었어요, 저는 펄벅 어머니과 함께 미국 펜실베니아 퍼커스시에서 살았어요. 1973년 펄벅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5년 동안 펄벅의 딸로 살면서 즐거운 기억들을 많이 가지고 있어요." 

펄벅은 줄리헤닝 씨에게 체스를 가르쳤다. "펄벅 어머니는 제게 체스를 가르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어요. 하지만 저는 체스를 잘하지 못했어요. 펄벅 어머니는 저에게 승리의 기쁨을 주기 위해 일부러 졌어요. 저 역시 종종 손자들이 저하고 체스를 하면 저를 이기도록 둬요." 줄리헤닝 씨는 펄벅과 체스를 두던 때를 잊지 못한다.

줄리헤닝 씨는 펄벅의 작품에도 애정이 대단했다. "저는 「대지」의 주제와 스타일을 즐겼던 만큼 어머니의 소설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은 「갈대는 바람에 시달려도(살아있는 갈대)」(1963)에요. 부유한 한국집안 출신 4대의 눈으로 본 대하소설이죠. 19세기 말부터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한국의 행보를 따라가는 그들의 이야기에요. 책 전반에 걸쳐 한국인들의 회복력 자부심 용기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줄리헤닝 씨는 펄벅의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다. 부천이 앞으로도 계속 문화중심지가 되길 바란다며 언젠가 직접 만날 수 있기를 기원했다.

   
▲ 펄벅기념관 야외 동산에 세워진 펄벅 동상 ⓒ부천타임즈 최수진 기자

한편, 1967년 소사희망원이 문을 열고, 1976년 문을 닫기까지 10년 동안 혼혈아와 고아 2천여 명이 소사희망원에서 생활했다. 우리나라 혼혈인 대부분이 펄벅재단에 등록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수 함중아, 정동권, 인순이, 윤수일 씨도 소사희망원 출신이다.

부천시는 옛 소사희망원과 펄벅재단이 있던 자리에 펄벅기념관을 만들었다. (경기 부천시 성주로214번길 61)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대문호이자, 아동 복지와 인종 간 불평등 해소를 위해 헌신한 펄벅 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함이다.

소사희망원 아이들이 펄벅의 80세 생일에 선물한 산수화 및 펄벅이 집필한 각종 서적 등 250여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먼나라 이웃나라 별별동화, 펄벅다문화탐험대, 문화해설사가 들려주는 펄벅이야기, 펄벅시네마, 펄벅기념문학상 공모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문화다양성을 이해하고,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 이날 사회를 진행한 고경숙 시인과 최규현 교수가 고재헌 씨를 소개 하고 있다 ⓒ부천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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