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 부산진구 부산보호아동자립지원센터 실습실에서 정 모(왼쪽 끝) 씨와 신성호 씨가 학생들에게 제빵기술과 바리스타 교육을 하고 있다. 이재찬 기자 chan@·부산보호아동자립지원센터 제공
누군가에겐 몇 푼에 불과하지만, 누군가에겐 '꿈의 선물'이 될 수 있다. '꿈을 잡자.' 부산에서 6년 전부터 아너 소사이어티 기부금으로 운영하고 있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수백 명의 시설보호 아동들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자격증을 따고, 꿈을 현실로 키워가고 있다.
제과·제빵 자격증만 4개
30대 사장님이 꿈인 언니
최고 바리스타를 꿈꾸며…
자격증 따고 대학생된 형님
"이젠 제가 보답해야죠"
자립센터 아이들 위해 맹활약
■제빵회사 사장을 향해…
"언니가 롤모델이에요." 정 모(21·여) 씨는 보육원 동생들에게서 이 말을 들을 때 가장 뿌듯하다.
5년 전 정 씨에겐 '딱 정해진' 꿈이 생겼다. 그해 보육원 선생님이 "학원에 다니며 정확한 꿈을 찾아보자"며 '꿈을 잡자' 프로그램을 권하면서부터다.
요리에 관심이 있던 정 씨는 제과·제빵 자격증 취득에 도전했다. 빵을 좋아하는 마음이 컸다. 어릴 적부터 선생님들이 빵집에 빵을 받으러 갈 때면 늘 따라다닐 정도였다.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다. 필기시험에 몇 번이나 떨어졌다. "이 분야가 저랑 안 맞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실기를 배우는 게 재밌어서 계속 버텼죠."
정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제과기능사·제빵기능사 자격증은 물론, 관련 자격증을 2개나 더 땄다. 모두 '꿈을 잡자' 프로그램 도움을 받았다.
정 씨는 대학에서 제과·제빵을 전공으로 선택했다. 학교를 다니며 저녁엔 부산보호아동자립지원센터에서 자신과 비슷한 환경의 아이들에게 제과·제빵을 가르친다. 일종의 진로 체험이다.
정 씨는 쉬는 시간이면 아이들과 진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처음엔 생각과 달리 힘들 수도 있지만, 어느 순간이 되면 '즐길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해 줘요."
정 씨의 현재 꿈은 대학을 졸업한 뒤 식품회사에 취직하는 것이다. 30대에 제과·제빵 회사를 창업하기 위해서다. 그때까지 제과·제빵 기술은 물론 외식사업의 전반적인 틀에 대해 배울 계획이다.
분명한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정 씨의 마음 한쪽에는 늘 꿈을 키워 준 분들에 대한 고마움이 자리 잡고 있다. "아너 소사이어티분들의 존재를 이번에 처음 알게 됐는데, 그저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롤모델'의 마음은 빛나고 있다. "많은 도움을 받은 만큼 똑같은 방법은 아니더라도, 저와 같은 환경의 친구들이 꿈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그게 저 나름의 책임감이라고 생각해요."
■최고 바리스타를 목표로…
"한 우물을 파서 유명해지자."
4년 전 고등학교 2학년이던 신성호(21) 씨가 처음 자격증을 따려고 한 이유다.
4살 때 보육원에 들어온 신 씨는 중2 때 동사무소에서 가족관계증명서를 보고서야 부모님 이름을 처음 알았다. 아버지가 오래 전 돌아가셨단 사실도 함께.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친가에서 신 씨를 키우려 했고, 어머니는 새 출발을 했다.
이후 신 씨는 유명해지고 싶었다. "아직 저의 존재를 모르는 어머니 남편께 언젠가 떳떳하게 인사드리고 싶어요."
손재주는 있지만 특별한 꿈은 없었던 신 씨의 일상에 변화가 생긴 건 '꿈을 잡자' 프로그램을 알게 되면서부터다. 기회라고 생각한 신 씨는 포털사이트에서 '손 쓰는 직업'을 검색했다. 여러 직업 중 바리스타가 눈에 들어왔다.
신 씨는 학원 수강비를 지원받아 고2 막바지에 '바리스타 2급' 자격증을 땄다. 계속 배우려면 우선 돈을 모아야 했다. 고3 여름, 자동차부품 공장에 들어가 8개월 동안 1000만 원을 모았다.
성인이 돼 맞은 3월. 신 씨는 서울에 커피를 배우러 갔지만 생각대로 일이 풀리지 않았다. 그해 6월 다시 같은 공장에 출근해 매일 퇴근 시간만 기다리는 생활이 이어졌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대학 진학을 선택했다. 지난해 바리스타 전공으로 새내기 대학생이 된 뒤 신 씨는 미친 듯이 커피에 대해 배웠고, 2학년 때부터는 동기들도 인정하는 실력자가 됐다.
올 8월 신 씨는 해운대 한화리조트에 조기 취업해 식음업장에서 일하고 있다. 손님에게 커피 대신 술과 음식을 건네고 설명하는 일이지만 신 씨는 감사하다. "일찍 마칠 땐 학교에서 커피 연습도 할 수 있고, 회사에 다니며 커피 관련 대학원도 갈 수 있어서 좋아요."
신 씨는 부산보호아동자립지원센터에서 아동들을 대상으로 바리스타 교육도 맡고 있다. "흥미가 없던 아이들이 커피를 더 배우고 싶어할 때 가장 뿌듯해요." 조금이라도 더 커피를 접할 수 있어 신 씨에겐 고마운 시간이다.
"꿈을 잡자 프로그램이 지금의 제 꿈을 잡는 밑거름이 됐습니다. 저도 아이들이 꿈을 꿀 수 있게 도움을 주고 싶어요.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은 변함없고요."
최강호 기자 cheo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