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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찾은 美 입양아] 60년간 늘 허전함…“어머니 찾아 한국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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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27 06:59:05
수지 여사 (62ㆍSuzy Brodie Vogler) 가 2018 평창 동계올림픽 티켓을 자랑스럽게 내보였다. 지난해 5월부터 오매불망 기다려온 올림픽. 그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그는 21일부터 스피드 스케이팅, 알파인 스키, 아이스하키, 피셔 스케이팅, 폐막식까지 관람할 예정이다. 미국인인 그가 올림픽 시즌을 맞아 한국을 찾은 것은 단순히 경기를 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입양아인 그는 모국에서 올림픽이 열리는 역사적인 순간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어 미국 플로리다에서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는 “올림픽이라는 세계적인 행사가 모국 대한민국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바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인터뷰 하고 있는 수지 여사의 모습. [사진= 정희조 기자 checho@heraldcorp.com]
 

지난 12일 서울 강남구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만난 수지 여사는 설렌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 한국 방문은 세 번째지만 올 때마다 고향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했다. 그는 그동안 한국에서 찍은 사진 앨범을 펼치며 추억들을 꺼냈다. 그는 지난 2014년 12월, 부모님을 찾기 위해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그의 한국 이름은 ‘최성진’이다. 1956년 전라도 광주에서 태어난 그는 입양되기 전까지 충현원에서 자랐다. 충현원은 한국전쟁 직후 부모를 잃은 고아를 위해 미국에서 온 선교사들이 설립한 고아원이다. 그는 1957년 2월 28일 길가에서 버려진 뒤 경찰에게 발견돼 이곳으로 보내졌다. 다섯 살이 되었을 때 최 씨는 브로디(Donald H. Brodie)씨 부부에게 입양됐다. 
 
수지 여사의 어릴 적 사진.

그가 한국에 처음 왔을 때 가장 먼저 찾은 곳도 충현원이다. 최 씨는 “모든 게 완벽했던 미국 생활이었지만 뭔가 마음 한 켠에 알 수 없는 허전함이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자신의 뿌리를 찾고자 하는 본능 같은 것이었다. 충현원에서 그는 한국 부모님을 찾을 주요 단서는 찾지 못했지만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충현원에서 입양 기록서를 확인한 결과 최 씨를 발견했을 당시 그의 품속에서 ‘최성진’이라는 이름과 ‘출생일 1956년 10월11일’이라고 적힌 쪽지가 있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의 한국 이름을 부모가 아닌 고아원 직원이나 공무원이 지은 줄 알고 지냈었다. 자신의 이름을 부모님이 지어줬다는 사실만으로도 부모님의 희미한 기운이 느껴지는 듯했다.  

그는 충현원에서 입양기록서, 자신의 어릴 적 사진 등을 사진으로 찍어 휴대폰과 태블릿 PC 등에 담아 간직하고 있었다. 인터뷰 하는 중간 중간에도 옛날 사진들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혹시라도 그 안에 그동안 찾지 못한 부모님에 대한 단서라도 있을까, 그는 여러 차례 돋보기 안경을 벗었다 썼다 반복했다.  
 
2014년 처음 언니들(왼쪽 두번째,세번째)과 한국을 찾았을 때 수지여사(왼쪽에서 4번째)가 입양 전까지 자랐던 광주 충현원에서 찍은 사진. [태블릿 촬영= 정희조 기자 checho@heraldcorp.com]

최 씨의 미국 생활은 행복했다. 자상한 부모님과 공감능력이 뛰어난 언니들과 유년시절을 보냈다. 특히 언니 사라(Sara)와 제니(Jenny), 오빠 켄트(Kent)가 그를 친남매처럼 대했다. 그는 자신을 행운아라고 여러 번 강조했다. 그에게 자신을 버린 부모에 대한 원망감 같은 것은 찾을 수 없었다. 그는 “입양 1세대 중에는 입양 트라우마를 겪고 고통스러운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 많지만 나는 입양아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거나 위축된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저 모든 것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최 씨는 그가 받은 행운을 사회에 돌려주기 위해서 현재 자선사업을 펼치고 있다. 미국 명문 사립고인 서필드 아카데미에서 재단이사를 9년 째 맡으면서 자선교육사업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현재 이 학교에는 그의 가운데 이름을 딴 ‘브로드홀’이라는 기숙사가 준공을 앞두고 있다. 또 최근엔 가족들과 함께 미국 일리노이 주에서 ‘Willow springs’라는 가족재단을 설립해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을 후원하고 여성단체 등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남 부러울 것 없는 미국 생활이지만 마음 한 켠에는 늘 모국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이 있었다. 그는 “스무 살이 됐을 때부터 한국에 대해서 찾아보기 시작했고 서른 살이 되었을 때도 자꾸 생각나 한국에 대해서 나름대로 연구를 했다”며 “한국에서 뿌리를 찾는 것은 퍼즐의 마지막 조각을 찾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혹시 부모님을 만난다면 무엇을 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그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나를 버린 것에 대해서 미안해 하지 말라’는 말을 꼭 해주고 싶다고 했다. “부모님이 나를 버린 것에 대한 서운함은 없어요. 그 추운 겨울날 자식을 버리며 고통스러웠을 친 엄마를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아파요. 만약 살아계시면 늦었지만 그분의 아픔을 감싸드리고 싶어요.”

s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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