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 fatherless to the Father "

아빠가 없는 자에게 하나님을!

공지사항

YES Daddy는 아동복지시설로서 진정한 영적 부모를 찾아주게하는 비영리 기관입니다.

게시글 검색
한국 아동 해외입양, 법적 심판대에 서다!
yesdaddy 112.184.51.116
2019-04-05 20:01:36

학교교육에서 미처 살피지 못했던 이른바 ‘공교육의 외부’로 눈을 돌리면 앞서 살핀 성소수자(LGBT), 국내외 입양아들,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 장애아, 고아 및 빈곤층 자녀 등이 눈에 들어온다.

믿기지 않겠지만 50~70년대 한국의 경제개발 시기 최대의 수출품목을 꼽을 때 가발, 눈썹, 신발, 청바지, 선박, 철강, 자동차 등이 아니라 ‘아동’이라는 견해가 있다. 지금껏 약 20만명을 해외로 내보낸 것이다. 이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사건으로서 한국이 20세기 최대의 ‘고아 수출국’이라는 오명을 갖게 한 이유다.

한국 현대사의 또 하나의 어두운 그늘인 아동들의 ‘디아스포라’ 즉 입양의 실태를 살피고 숨어있는 문화적 코드로서 그 원인을 찾아내는 것은 역사적 오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마땅한 과정이라 아니할 수 없다. 여기서는 주로 해외입양을 다루고자 한다. 

6·25 전쟁은 고아들의 해외입양을 촉발시켰다.
6·25 전쟁은 고아들의 해외입양을 촉발시켰다.ⓒ자료사진

입양 실태 

문헌을 토대로 한국입양의 특성을 3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통계에 누락된 것까지 추산하면 한국은 한국전쟁 이후 지금껏 20여만명의 아동을 해외로 내보냈다. 주요 대상국가는 미국, 북서유럽 그리고 호주다. 20세기 후반부는 중국이 그 오명을 이어받고 있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의하면 1958~2016년까지 한국이 내보낸 해외입양아는 총 17만여명이었다. 17만여명 중 11만 2,000여명이 미국으로 입양되었다.  

보건복지부 및 2019년 1월 26일자 세계일보 내용을 재구성 함.
보건복지부 및 2019년 1월 26일자 세계일보 내용을 재구성 함.ⓒ필자 제공

심지어 1985년도에는 무려 8,837명, 평균 하루에 24명씩 입양을 보냈다(2018년 2월 20일자 호주의 저널 ‘더 콘버세이션’). 이는 전두환 독재정권 시절이었는데 그의 폭정의 대상에 저항력 없는 아동들까지 포함되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은 모두 돈이 되어 가히 ‘입양산업’이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1988년에 해외입양시 아동 1명당 5,000달러(편의상 현재의 환율로 보면 한화 약 567만원), 2000년에 10,000달러(1,135만원)의 돈을 받았다. 이후 그 액수가 증가하여 1인당 11,000~16,000달러(1,248만원~1,816만원)의 돈을 받는 입양기관이 있었다. 

2000년 이후 이렇게 아이 1명당 보통 1500만여원씩 했는데 보건복지부는 현실에 어두웠다. 당국은 1명당 해외입양시 8,603.38달러(976만원), 국내입양시 1,759.68달러(199만 7천원)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2011년 한 해만 해도 한국에서 입양을 통해 약 3,500만 달러(395억 4400만원)의 돈을 벌었다(2012년 2월 8일자 KEI 한미경제연구소). 

둘째, 2016년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해외입양아 중 1세도 안된 영아의 비율이 92%로 이 역시 세계 최대이다. 역시 인도주의를 망각한 것이 아닌가 의문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셋째, 국제적으로 드물게 원조대상 국가에서 원조하는 나라로 바뀐 나라, 한국이 지금도 수백 명씩 해외로 입양을 보내고 있다. 이에 대한 국내외의 비판에 따라 2013년에 236명으로 현저히 줄었다가 2014년에 535명, 2015년에 374명으로 다시 늘어나고 있어 여전히 ‘아동 수출국’이라는 오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참고:2019년 1월 26일자 세계일보, 2018년 5월 11일자 한국일보, 2017년 6월 9일자 머니투데이). 

근래에 한국에서 미국으로 입양보내는 숫자는 급격히 줄고 있다. 하지만 중단된 것은 아니다. 역시 2013년에 많이 줄었다가 다시 늘어나 2017년에도 276명을 보냈다. 이 해 미국에서 받은 총 입양아는 4,714명이다. 2011~2012년도에 한국은 중국, 이디오피아, 러시아 다음 4번째로 많은 아이를 미국으로 보내 톱 5에 들고 있다. (출처:미 국무부 입양통계) 

2017년까지 한국아동이 미국에 입양된 추이
2017년까지 한국아동이 미국에 입양된 추이ⓒ미 국무부

다행히 입양이 아동의 인권을 보장하고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지 말자는 공감대가 확산되면서 연구논문, 소설, 영화, 매스컴의 보도 등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해외입양아, 한국정부와 입양기관을 상대로 소송 제기 

입양관련 국내보도도 상세하지만 외지에서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는 데 주목하게 된다. 2019년 1월 24일자 타임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한국의 입양아가 미국에 입양된 후 불법체류자가 되어 한국으로 추방된 다음에, 모국인 한국정부와 입양기관을 법적으로 고소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사건의 내막을 살피기로 한다.(기사 제목:미국에서 추방된 한국의 입양아, 한국 정부와 입양기관을 상대로 소송제기). 

 
‘애덤 크랩서’는 그가 태어난 나라 한국에서 지금 낯선 주변인으로 살고 있다. 그는 미국에 사는 아내, 자녀들 그리고 친구들과 강제로 이별한 상태로써 한국의 언어와 문화가 익숙하지 않다. 3살 때 미국으로 입양된 후 40년이 지나 그가 미국에서 느닷없이 추방당했기 때문이다. 

크랩서는 미국에서 두 가정에 의해 학대당하고 버려졌다. 그의 양부모들 누구도 그에게 시민권을 받도록 서류를 갖춰주지 않았다. 이렇게 시민권이 없는데다 경미하지만 범죄기록이 확인되면서 법원판결로 태어난 나라, 한국으로 쫓겨난 것이다.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지금 불안하며 강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토로한다. 자신의 삶이 왜 이렇게 뒤바뀌어 버렸는지 해답을 찾으려고 애쓴다고 했다. 그가 찾은 해답은 그가 한국정부와 입양기관인 서울 홀트아동복지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장래의 시민권을 받게 하는 장치 없이 수천명의 한국의 아동들이 미국과 다른 나라에 보내진 그 총체적인 무관심과 부실함의 책임을 묻기 위해서다. 그의 변호사에 의해 2억원의 민사소송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장이 서울지방법원에 제출되었다. 연합뉴스에서 이 소식을 독점 보도했다.

이로써 70~80년대 무분별하고 불필요하게 많은 아이들이 일종의 거래(사업)형태로 폭증했던 어두운 입양의 역사가 드러나게 되었다. 당시 한국의 군사정권은 경제성장에 몰두하면서 가능한 먹여 살릴 인구를 줄이려고 이른바 ‘아동수출’에 열을 올렸다. 

여기에 입양기관이 가세하여 엄격한 감독 없이 빠른 속도로 가능한 많은 아동들을 모아 보내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이 과정에서 (부모가 있는데도 없다고 하는 것과 같은) 서류조작이 이뤄졌다. [이른바 ‘서류 고아’(paper orphan)였다]. 크랩서의 케이스는 미국에서 시민권을 취득하지 못한 수천명의 한국인 입양아들의 불안한 법적 상황을 대변하고 있다.

지금 미국에서는 불법이민자들에 대해 예전보다 단속이 강화되었다. 이들이 미국내에서 범죄라도 저지르면 (신분이 노출되어) 강제 추방될 위기에 놓인다. 크랩서의 한국이름은 신성혁이다. 이는 그의 생모가 지어준 이름이다. 크랩서는 미국에서 추방되어 현재 서울에서 살고 있는 5명 중의 한 명이다.

크랩서를 제외한 다른 입양인들도 한국에서 정신적 질병을 앓고 있거나 폭력 등 범죄로 징역을 살고 있다. 시민단체에서는, 한국정부가 추방된 입양아의 직업 등 실태파악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비판하며 실제 추방된 숫자는 공식 통계자료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한다.  

또한 정부관리는 추방된 다른 사람들 관련 자료를 언론에 제공하려 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정부를 상대로 한 인권관련 소송은 수년이 걸리며 승소하기도 힘들다. 그 이유는 한국에서 형사사건이 아닌 경우 증거를 제출할 의무가 전적으로 증거능력이 없는 원고에게 지워져 있기 때문이다.

크랩서의 변호인 중 한 명인 소라미에 의하면, 과거의 사례가 말해주듯이 설령 크랩서가 이긴다고 해도 배상금은 기대보다 훨씬 적을 것이라고 한다. 크랩서는 보상을 받는 것보다 정부관리와 입양업체를 법정에 세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정부와 홀트아동복지회가 입양절차를 사전, 사후 면밀히 점검했다면 미국의 양부모가 크랩서의 시민권 취득을 노력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2019년 1월 25일자 JTBC 뉴스 캡쳐
2019년 1월 25일자 JTBC 뉴스 캡쳐ⓒJTBC유튜브 화면캡처

그는 미 이민국에 의해 2016년 11월에 추방됐다. 불법 무기소지 등 경범죄 사건으로 신분이 드러나면서 시민권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자신의 입양이 불법적인 서류조작 즉 부모가 있는데도 고아로 처리되어 보내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이에 대한 책임도 밝히려고 한다.

당시에 크랩서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한국인 입양아동들은 부모를 알고 있거나 일시적으로 부모를 잃고 있는데도 고아로 서류에 기재되곤 했다. 그리고 미국법에서는 이들도 쉽게 받아들이도록 되어 있다. 

입양받는 외국인이 한국에 오지 않고도 아이를 쉽게 인도받게 했다는 점에서 한국정부의 책임이없을 수 없다는 것이다. 43세의 크랩서는 연합뉴스에 말한다. “매일 생존을 위해,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정의를 위해, 국가의 책임을 위해 그리고 해답을 찾기 위해 지치지만 결연하게 애쓰고 있습니다.”

홀트의 김호현 대표는 자신들은 당시의 법과 입양절차를 따랐을 뿐이며, 이 문제는 주로 미국의 양부모와 관계당국이 책임질 문제라고 한다. 성창현 보건복지부 관리는, 현재 정부도 입양인들의 국외추방을 막기 위해 미국 정부와 협의하는 등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미 국무부도 국토안보부에 문제를 조회하도록 요청했는데 아직 구체적인 답변은 없다. 현재 서울시내 비좁은 원룸 빌라에 사는 크랩서는, 강제추방이 자신의 결혼생활에 심각한 타격을 가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사랑하는 자녀들의 일상생활에 함께 할 수 없음에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그는 막다른 골목에 갇힌 느낌이라고 한다. 한국말을 몰라 힘들고, 한국의 정부와 공공기관의 관리는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신과 의사는 영어를 몰라 대화가 어렵다. 그나마 다행히 생모를 몇 개월에 한번씩 만나 어렵사리 그간 겪었던 일들을 얘기하곤 한다. 

앞으로 그가 미국으로 돌아가려면 아직도 8년을 기다려야 한다. 한국의 고아들 약 20만명의 해외입양, 이것이 지난 60년간의 결과다. 이들 대부분 미국으로 갔다. 많을 때는 1979년에 4천명 이상이 해외로 보내졌다. 그 해에 크랩서도 이 대열에 끼어 있었다. 

이 상황을 아는 시민운동가에 의하면, 당시의 (박정희) 군사독재와 결탁한 홀토아동복지회는 아동의 복지에는 관심이 없었고, 다만 연간 추정치로 200만 달러 즉 약 20억원씩 수익이 나는 돈벌이에만 관심이 있었다고 한다.

전화로 연결된 크랩서의 생모 권필주는 흐느끼며 아들에게 죄를 지었다고 후회한다. 그녀는 크랩서와 2살 위인 누나를 낳았다. 그녀는 당시 다리가 불편했으며 아이들 아버지 즉 남편으로부터 버림받았다. 그녀는 경제력이 없고 가난해서 굶어 죽을 것 같아 결국 아이양육을 포기하고 (충북 제천 소재) 한 보육원에 맡겼다고 했다. 

모자가 둘 다 언어장벽이 있어 항상 통역하는 사람이 있어야 대화가 된다. 1979년 크랩서는 자신의 누나와 함께 미국 미시건주의 학대하는 가정에 맡겨짐으로써 행운은 자신들 편이 아니었다고 한다. 

7년후에 그 양부모는 10살인 크랩서와 그의 누나를 버리면서 양부모와 헤어졌다. 이 양부모들은 아이들의 머리를 자주 벽에 쥐어박으며 폭력을 행사했다. 심지어 주방기구로 때리고 가열된 물건으로 화상을 입히기도 했다. 1991년에 양부모는 아동 학대, 성학대 및 성폭행으로 체포되었다. 1992년에도 이들은 여러 건의 아동학대 및 폭행죄로 기소되었다. 

양부모와의 다툼후에 쫓겨난 다음, 지역내 사회복지기관에 맡겨진다. 크랩서의 서류에는 주거침입죄도 추가되었다. 왜냐하면 한국에서 입양떠날 때 가져간 한국어 성경과 개 인형을 양부모 집에 두고 나왔는데 허락없이 그것을 가지러 집에 들어갔다가 발각되었기 때문이다. 

후에 불법무기 소지와 폭행죄가 추가되었다. 그동안 크랩서는 고비를 넘기고 이발소와 실내장식업 등을 하면서 자립했고 결혼도 했다. 하지만 2015년 (27년만에 다시 만난 누나와 함께; 누나는 다른 가정에 입양되어 시민권을 취득함) 미 이민국에 영주권(green card)을 신청하는 과정에서 과거의 범죄경력이 기록될 수밖에 없었고 이 때 강제추방이 결정되었다.

그는 “사랑하는 가족과 생으로 이별당하여 홀로 무력감 속에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라고 한다.) 
 

댓글[0]

열기 닫기

공지&소식

YESDaddy 예스대디

상단으로 바로가기